베를루스코니는 누구인가? 이탈리아의 미디어 거물이자, 최장수 총리
본문 바로가기
시사&연예

베를루스코니는 누구인가? 이탈리아의 미디어 거물이자, 최장수 총리

by 요설남 2023. 6. 13.
반응형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강력하고 독특한 인물 중 하나로 정치와 경제, 미디어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그의 풍부한 경제적인 업적과 정치적인 영향력은 그를 이탈리아의 미디어 거물과 정치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향년 87세의 나이로 고인이 된 베를루스코니는 누구였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베를루스코니
베를루스코니

 

경제 활동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1936년 9월 이탈리아 밀라노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2023년 6월 향년 8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1961년 부동산 개발업에 뛰어들어 부를 축적한 뒤 1978년에 이탈리아의 주요 미디어 그룹인 메디아셋(Mediaset)을 설립하게 됩니다.

 

- 그는 이를 통해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상업 방송 네트워크 중 하나를 만들게 됩니다.

 

메디아셋은 캔나레 5(Canale 5), 이탈리아 1(Rete 4), 이탈리아 2(Italia 2) 등의 텔레비전 채널을 운영하며 이탈리아의 방송 산업을 선도했습니다.

 

- 선정적 방송으로 언론 재벌로서의 영향력을 키우게 됩니다.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 프로 축구 세리에 A의 인기팀 AC 밀란(AC Milan) 축구 클럽의 소유자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 그는 1986년부터 이 클럽을 소유하여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발전시킴으로써 AC 밀란이 성공적인 기록을 달성하도록 도왔습니다.

 

- 2017년까지 구단주로 활동하게 되고, 이로써 그는 이탈리아의 가장 부유한 정치 거물로 탄생하게 됩니다. 

 

정치 활동

이탈리아 최장수 총리 베를루스코니

 

베를루스코니는 1994년 자유의 집회당(Forza Italia)의 창당 이후 이탈리아의 총리로 처음 선출되게 됩니다.

 

그는 1994년 5월 10일부터 1995년 1월 17일까지 이탈리아 총리를 8개월간 짧게 지내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 2001년 6월 11일부터 2006년 5월 17일까지 5년 11개월 동안 다시 이탈리아 총리로 재직한 후,

2008년 5월 8일부터 2011년 11월 16일까지 3년 6개월 동안 세 번째로 이탈리아 총리로 당선되어 재직하게 됩니다.

 

- 이 기간 동안 베를루스코니는 세 차례의 총리 지명을 받았고,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의 최장수 총리로 기록되었습니다. (9년 1개월)

베를루스코니는 이 세 차례의 총리 재직을 통해 이탈리아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그의 정치 경력은 논란과 관심을 모았습니다.

 

 

논란의 중심

하지만 베를루스코니는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의 정치적인 영향력과 이탈리아의 미디어 제어와 정치적 영향력을 통해, 베를루스코니는 많은 비판과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세금 회피 사건

그의 세금 회피 사건은 특히 큰 논란을 야기했습니다. 2013년에는 베를루스코니가 세금 회피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이로 인해 4년의 집행 유예와 관련된 벌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 2013년 8월, 영화 배급 권리를 자신의 회사인 메디아셋(Mediaset)에 저렴하게 판매하여 세금을 회피했다는 이유로 이탈리아의 법원은 베를루스코니를 세금 회피와 관련된 혐의로 유죄로 판결하게 됩니다.

이 판결은 베를루스코니가 2006년과 2009년 사이에 기업 거래를 통해 발생한 7천만 유로(약 8,300만 달러)에 대한 세금을 회피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베를루스코니는 4년의 집행 유예와 관련된 세금 회피로 인한 1억 5천만 유로(약 1억 7,700만 달러)의 벌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이 세금 회피 사건은 베를루스코니의 정치 경력과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었고, 이탈리아의 법원 판결은 베를루스코니의 세금 회피에 대한 비난과 논란을 일으켰으며, 이는 그의 정치적인 입지와 관련된 더 큰 논쟁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

또한 베를루스코니는 "루비게이트(Rubygate)"라고 불리는 미성년자 성매매와 관련된 사건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 그러나 베를루스코니는 이러한 주장을 부인하였고,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루비게이트 사건  마리아 카라치올리(Maria Carfagna)라는 모델과 배우 출신의 여성인 "루비"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마라코 가고니(Mara Carfagna)라는 여성이 베를루스코니와의 관계를 폭로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가고니는 2010년 17세 때 베를루스코니의 마녀 파티 (붕가붕가 파티로 알려진 난잡한 섹스 스캔들)에서 성매매에 참여한 것으로 주장했으며, 그 이후로 베를루스코니와의 성적 관계를 갖는 여성들이 그의 파티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꺼내 놓게 됩니다.

 

하지만, 베를루스코니는 이 사건에 대한 주장을 강력히 부인했고, 그의 변호팀은 그의 무죄를 주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탈리아의 법정에서 큰 관심을 받았고, 논란이 되었습니다. 2013년 6월에 이탈리아 상급법원은 베를루스코니의 유죄 판결을 선고했으나, 2014년 3월에 그의 무죄를 선언하는 판결이 내려졌고, 최종적으로 베를루스코니는 루비게이트 사건에서 무죄로 인정받게 됩니다.


루비게이트는 베를루스코니와의 관계를 포함한 이탈리아의 정치적인 지형과 베를루스코니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국내외 언론에서 널리 보도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베를루스코니의 정치 경력과 사회적 입지에 대한 논쟁을 일으켰고, 이탈리아 정치의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베를루스코니의 정치 경력 역시 논란이 많았습니다. 그의 지배적인 정치적 영향력과 미디어 제어는 이탈리아의 민주적인 프로세스와 상충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일부 비평가들은 그의 정치적인 입지가 이탈리아의 민주주의와 투명성에 해를 입힌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논란과 사건들은 베를루스코니의 인물적인 복합성과 이탈리아 사회에서 그의 역할을 논의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한편으로는 경제적인 성공과 미디어 업계에서의 영향력으로 인해 존경을 받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인 논란과 법적인 문제로 인해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베를루스코니의 인물적인 이야기는 단순히 논쟁적인 측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의 업적과 영향력은 이탈리아의 경제와 정치, 미디어 산업에 큰 흔적을 남겼으며, 그의 인물성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논의의 대상이 됩니다.

반응형

댓글